안정으로 오해하는 ‘적극적 관여 중단’

  • 최종락
  • 품질관리기술사
  • (사)한국품질기술사회 품질연구소 부회장
  • 한국혁신성장연구원 대표
  • <초일류 기업의 품질유전자> 저자

성과를 내는 사람은 점점 지쳐간다. 품질 문제와 생산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회사는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지만, 조직 내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조용히 축적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번 아웃을 경험하며,핵심 인력일수록 그 비율은 더 높다. 이는 개인의 정신력이 약해서 라기보다 조직이 특정 사람에게 성과를 의존해 온 방식, 다시 말해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사람이 교체되어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다른 사람을 통해 반복된다.

Source : 품질경영 紙 2026 February Vol.629

과거에는 같은 방식으로도 성과가 났고, 조직은굴러갔다. 사람들은 더 오래 버텼고, 많은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나 체계 없이 현장에서 개인의 판단과부담으로 임시 처리되었다. 그러나경영 환경은 달라졌다. 시장의 변동성은 커졌고, 효율중심 경영이 일상화되면서 인력 리소스는 줄었다. 개인은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했고, 그사이 요구되는 품질수준은 훨씬 더 높아졌다. 대응 속도는 빨라졌지만, 사람과 조직이 회복하고 학습할 여유는사라졌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많은 경영자들은 구조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 운영 방식을 점검하기보다 태도와 역량의 문제로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의 출발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체계가 뭘 갖춰진 기업일수록 생산과 운영의 고도화는 설비·재료·방법, 이른바 3M에 집중된다. 사람에 대한 구조적 관리와 설계는 여전히 일부 초일류 기업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반복되는 많은 문제들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소모 시키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고장, 그 시작점

필자가 말하는 사람의 고장’은 단순한 역량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정·관계·의미.동기라는 인간 시스템의 핵심 요소가 소진(Exhaustion)되거나 왜곡(Distortion)되면서 판단과 행동의 질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가 누적되면 생산과 운영 전반의 트러블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표1]

[표 1] 사람고장이란?

사람의 고장이란 감정·관계·의미· 동기라는 인간시스템의 핵심 요소가 소진되거나 왜곡되면서 사람이 본래의 판단. 행동·기능을 유지하지 못하고, 설비보다 먼저 멈추거나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와 행동의붕괴 현상을말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환경과 업무 구조설계 잘못이 누적된 결과로, 오류· 갈등·지표 왜곡·품질 저하 등 조직 전체의 리스크로 확산된다.

 

인간시스템은 설비 시스템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설비는 상태와 한계가  명확하지만 사람은 감정과 관계, 의미와 동기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 요소들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 운영을 실제로 떠받치는 기반이다. 문제는 이 기반이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야근, 임시 조치의 누적 근거 없이 바뀌는 기준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과 그 때마다 사람은 버틴다. 그리고 조직은 이 ‘팀’을 헌신이나 책임감으로 오해한다. 조직은 버티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구조를 점검하지 않는다. 당장은 돌아간다는 이유로 문제를 미룬다. 이 판단은 언제나 사람의 여력을 담보로 한다. 이 지점에서 인간 시스템의 1차 고장이 시작된다. 번아웃은갑작스러운 탈진이 아니라, 조용한 소진의 축적이다. 사람은 여전히 자리에 있지만, 시스템을 지탱하던 기능은 약해진다. 감정이 소진되면 판단은 짧아지고, 관계가 훼손되면 협업은 형식으로 변한다. 일의 의미가 흐려지면 문제를 끝까지 붙잡지 않게 되고 동기가 닳아가면 예방과 개선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예방이 사라진 ‘소방수 방식’

이 방식이 반복되면 조직은 문제를 없애는 능력보다 문제를 견디는 능력을 먼저 학습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설비 고장은 기술적 원인으로 분류되지만,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점검은 미뤄지고, 기준은 흔들리며, 이상 징후가 있어도 일단 돌리고 보자”는 판단이 반복된다. 이는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사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고장이 설비 고장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예방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방은 쉽게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사후 대응은 즉각적인 결과를 만든다. 불이 났을 때 해결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소방수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조직이 선호하는 운영 방식으로 굳어진다. 소방수 방식이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 당장의 불을 끄는데 집중하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견디는 능력을 조직의 표준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방식은 반드시 사람의 소진을 전제로 작동한다.

많은 대표와 경영진은 이러한 사후대응중심의 운영조차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당장의 문제를 처리하는 편이 의사 결정이 단순하고, 비용과 책임이 눈에 잘 보인다는 이유로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번 아웃은 조직 전반에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 늘 비슷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문제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사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 ▲호출에 즉시 반응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조직의 공백을 메우며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보호 받지 못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시 호출되고, 여력이 줄어들어도 역할은 줄어들지 않는다.

번 아웃은 개인의 체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특정 사람에게 기대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과정에서 조직 안에는 새로운 기준이 형성된다. 불을 끄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고, 문제를 미리 막으려는 사람은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야근과 희생은 능력의 증거가 되고,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소방수는 개인의 역할을 넘어 조직이 선호하는”일 잘하는 모델이 된다.

 
 

다수로 확산되는 ‘동기의 소진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사람의 고장은 1차 단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초기에는 소수의 핵심 인력이 과부하와 책임 집중으로 소진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조직이 이를 개인의 문제로 해석하고 구조를 점검하지 않는 순간 고장의 성격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소방수로 불라는 이들이 반복적으로 소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직이 무엇을 보상하고 무엇을 방치 하는지를 학습한다. 문제를 미리 막아도 주목 받지 못하고,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정당한 평가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가 터진 뒤에야 의사 결정과 관심이 집중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구성원들은 점차 의미와 책임의 범위를 스스로 조정하게 된다. 이는 의욕 상실이나 태만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합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판단이다. 질문을 줄이고, 기대치를 낮추며,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영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행동이 변화한다. 그 결과 사람은 여전히 자리에 있지만, 조직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문제를 더 이상 문제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예방과 개선은 개인의 선택지에서 사라지고, 문제는 발생한 이후에만 다뤄지는 대상이 된다.  

이 시점에서 ‘사람의 고장’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의 소진 문제가 아니다. 번 아웃은 소수에게 집중되지만 의미와 동기의 소진은 이를 지켜 본 다수에게 확산된다. 의미와 동기가 조직 전반에서 철수하면서 조직은 표면적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학습과 회복 능력을 잃은 상태로 전환된다. 많은 조직이 이를 안정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 관여가 중단된 상태에 가깝다. 이상 징후를 알아도 굳이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 하고, 필요 이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조직은 다시 소방수를 찾고 같은 방식으로 고장을 반복한다. 이것이 구조를 바꾸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사람고장의 2차 고장이며, 개인을 교체해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의 고장은 개인의 한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버팀을 전제로한 구조가 1차 고장을 만들고, 그 모습을 학습한 조직이 2차 고장을 확산 시킨다. 설비 고장을 비롯한 운영 체계의 트러블은 자체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문이 사람의 그곳으로 전이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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